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7 사건 (문단 편집) === 참안의 발생 === ||[[파일:임상겸.jpg]]|| || 임상겸의 죽음을 묘사한 그림 || 열강이 파업 진압을 요구하자 우페이푸는 2월 7일부터 특별 계엄령을 선포, 조합 간부들의 체포와 각 역에 2만명의 병력을 배치를 지시했다. 이날 강안에서 총공회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규찰대를 상대로 공회를 포위하고 있던 군경이 사격을 가해 2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군경은 노동자규찰단 부단장 증옥량 등 수십명을[* 중국 공산당의 주장으로는 36명.] 살해했다. 강안분회 위원장 임상겸은 한커우에서 체포되어 기차역의 전신주에 꽁꽁 묶인 채 노동자들에게 직장에 복귀하라는 지시를 내리라는 위협을 받았지만 "내 목은 자를 수 있지만 파업은 풀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에 군벌들은 역 광장에서 임상겸(林祥謙)을 칼로 난자하여 공개처형했다. 장신점에서도 군대가 노동자들의 기숙사를 습격하여 노동자들을 마구 구타하며 파업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규찰대 부대장인 기관차공장 노동자 갈수귀(葛樹貴) 등 6명이 살해되었다. 정저우역에서는 정저우철도공회 위원장 고빈(高斌)이 군경의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고 고빈을 포함해 4명의 노동자가 옥사했다. 2월 8일 3천 명의 노동자들의 군영 앞에 모여 "우리의 동지를 돌려달라!", "우리의 자유를 돌려달라!"고 외치며 시위를 했지만 군벌들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로 발포하여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월 9일, 경한철도총공회와 무한공단연합회는 군벌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노동자들에게 직장복귀 명령을 내렸다. 2월 15일에는 우창의 홍산 기슭에서 소요남이 경한철도초공회와 우한공단연합회의 법률고문인 이양(施洋)을 살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